일제강점기 때에 독립운동을 한 여환옥 선생의 생가인 <성산여씨 하회댁>입니다.
경북 문화재자료 제388호입니다.
한눈에 봐도 정말 멋스러운 집이 아닌가요?
예전에는 이렇게 대문이 없었는데
올해 다시 찾아가 보니, 대문이 생겼네요.
옛날에는 대문간이 있기는 했어도 허물어져서 헛간으로만 쓰고 있었답니다.
대문 안쪽에 보이는 건물이 대문채입니다.
<성산여씨 하회택>이라고도 합니다.
18세기 초에 처음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그때는 60여 칸짜리로 굉장히 규모가 큰 집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농민항쟁(1870년)과 1936년 큰 물난리로 불타고 무너져서 지금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김천 지역에서 물난리 때문에 허물어진 문화재들이 무척 많더군요.
1936년 병자년 때에 우리나라에 큰 물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김천 지역뿐 아니라 서울, 강원, 경기 할 것 없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군요.
이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팔작지붕 건물이 양쪽에 있고 그 안쪽에도 지붕이 또 보이네요.
ㄷ자 형태 건물입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정면 3칸, 옆면 2칸인 안쪽 건물을 비롯해서 양쪽으로 굉장히 큰 집이랍니다.
안쪽에서 내다보는 대문채입니다.
좁은 마루 곁으로 계자 난간을 둘러놨네요.
꽤 운치 있습니다.
대청인데요.
대청도 꽤 널찍합니다.
이 집에서 태어난 성산 여씨 여환옥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에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랍니다.
군자금을 마련해서 상해 임시정부에 송금하기도 했고요.
또 지역의 청소년들한테 신교육을 시키려고 광명학숙을 만들기도 했지요.
1927년에는 신간회 지회장에 선출되어 경비를 부담하고 또 옥중에 있던 김준연, 여운형 등 애국지사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했다고 합니다.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는 성산 여씨들이 사는 곳이 많더군요.
이 둘레에는 성산여씨 하회댁의 주인공인 여환옥 선생보다도 훨씬 앞서 조선 중기 때 문신이자 의병장인 감호 여대로 선생을 배향하는 <경양서원>도 있답니다.
이다음 이야기에서는 <경양서원>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광명리 마을 앞,
정확하게 성산여씨 하회댁 앞으로 난 길 가운데에 커다란 왕버들 나무가 있답니다.
철 따라 굉장히 멋스러운 모습으로 서있는데, 아주 볼만한 풍경이랍니다.
지난 5월에 찍은 사진인데,
이 마을을 비롯해서 구성면에는 양파가 특산물이기도 하지요.
끝으로 예전에 성산여씨 하회댁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기사로 소개한 적이 있는데 함께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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