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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대양면사무소 공덕비(대양면 비석군) 영세불망비, 애민선정비, 시혜불망비 합천 대양면 마을에 들어섰을 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을 보고 들어왔네요. 여기는 합천군 대양면사무소 뜰 한 켠에 있는 비석군이랍니다. 이라고 하네요. 조선시대(1413년) 합주(陜州)를 합천군(陜川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때의 대양면(大陽面)은 본래 합천군의 지역으로서 1914년 4월 1일 합천군 대목면(大目面)과 양산면(陽山面), 초계군 백암면(伯岩面)이 병합되어서 11개 법정리(法定里)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대목면의 대(大) 자와 양산면의 양(陽) 자를 따서 대양면(大陽面)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관내에서 선정을 베푼 수령들의 덕을 기리려고 주민들이 세운 선정비기 이곳저곳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보존하고 관리하기가 어려웠겠지요. 2018년 9월에 여기, 대양면사무소 뜰에.. 2022. 8. 29.
[금산 천내리 고인돌] 고인돌을 돌로 비비며 기원을 한다? 1995년 3월 6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5호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467-1 제원교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 천내리 고인돌을 찾아갑니다. 제원교 아래 천내천이 흐르는 강 건너편에는 지금 한창 길을 낸다고 공사 중이네요. 저 언덕 위에다가 루가 하나 서 있네요.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마을 분한테 루의 이름을 들었는데 까먹었네요. ^^ 예부터 용화리에서 흘러온 금강의 물줄기가 이 구릉을 S자 형태로 휘어 돌아 충청북도 영동 쪽으로 빠져나가고 금산읍에서 나오는 봉황천과 천내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또 예전에는 여기에 가 있었다고 하네요. 천내리 고인돌은 금산 용호석을 둘러보는데 마을 분이 들려준 이야기를 따라 찾아온 곳이랍니다. 저 길 끝에 마을 정자가 보이네요. 정자 옆으로 올라가는 길로.. 2022. 1. 10.
<합천 구산서당> 구산 윤탁 선생을 기리는 서당, 담장 보수로 구경은 못했지만...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2호 경남 합천군 가회면 함방리 140-2번지 앞서 합천 회계서당과 윤탁, 윤선 신도비를 둘러본 뒤에 이번에는 으로 갑니다. 구산서당은 바로 구산(龜山) 윤탁(尹鐸) 선생을 기리려고 세운 서당입니다. 이분 또한 추담(秋潭) 윤선(尹銑) 선생과 마찬가지로 파평 윤씨이고 합천 삼가에서 나신 분이라고 합니다. 구산(龜山) 윤탁(尹鐸)(1554∼1593) 선생은 조선 중기 때 무신이었습니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부정이 되었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박사겸(朴思謙)·박사제(朴思齊)·노순(盧錞)·조계명(曺繼明)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 의병장으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요? 구산서당은 보수공사를 하고 .. 2022. 1. 10.
합천 구평 윤씨 및 윤선 신도비, 안내판이 완전 엉터리다! (합천 윤탁 및 윤선 신도비) 앞서 소개한 합천 회계서당에서 나와 멀잖은 곳에 웬 보호각이 하나 보여서 가봤습니다. 앞에 잡풀이 무성해서 앞까지는 더 다가가지 못하겠더군요. 올해 문화재 찾아다니면서 뱀, 벌에 하도 혼이 나서 멀찌감치 서서 구경하며 사진만 찍습니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320호 문화재 지정일이 2002년 8월 14일이네요. 앞에 안내판이 있어서 사진 한 컷 찍고 보니, 합천 구평 윤씨 및 윤선 신도비(陜川 龜坪 尹氏 및 尹銑 神道碑)라고 쓰여 있습니다. '윤선 신도비'면 바로 앞서 보았던 회계서당의 추담 선생을 말하는 거네요. 그런데 안내판 글씨가 뭔가 이상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글자를 지우고 볼펜으로 쓴 글씨를 써놨네요. 아하....... 그러고 보니, 이 안내판이 엉터리입니다. 제목부터 틀렸네요. '합천 구평 윤씨 .. 2022. 1. 9.
<합천 회계서당> 청백리 추담 윤선을 기리는 서당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함방리 257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1호로 지정된 입니다. 지난가을에 다녀온 곳이지요. 선조와 광해군 때,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 예조판서, 이조판서, 의정부 우참찬을 지내고, 청백리에 오른 추담(秋潭) 윤선(尹銑 1559∼1640) 선생의 공적과 학덕을 기리고, 충효정신을 널리 알리려고 1918년에 세운 서당입니다. 1592년 고향에서 임진왜란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갔는데, 선조가 이미 의주로 떠나자 바로 뒤쫓아갔다고 합니다. 선조가 그 충절을 가상히 여겨 사헌부 장령에 임명하고, 특별히 명하여 세자를 수행하게 하고, 종묘의 신주를 봉행하게 하였다고도 합니다. 황금들판이 한창이던 가을, 풍경이 참 아름답고 조용한 함방리 마을입니다. 1918년에 추담 선생의 덕행을 기리려.. 2022. 1. 9.
[의병장 학촌 박이룡 신도비] 김천 대항면 덕전리 세송마을 김천시 대항면 덕전 3리 세송 마을입니다.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학촌(鶴村) 박이룡(朴以龍) 장군의 신도비와 재실입니다. 세송 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니, 세송 작목반이라는 곳 앞에 굴이 나오네요. 이 굴을 지나가야 합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곳입니다.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유모차를 밀며 걸어가시네요. 천천히 천천히 틈을 두고 따라갔습니다. 어머나~! 바로 굴 끝까지 나오니 저기 앞에 비각이 보입니다. 여긴가? 아하, 맞습니다. 이게 바로 의병장 학촌(鶴村) 박이룡(朴以龍) 장군을 기리는 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건물은 재실인 듯하네요. 네 맞습니다. 입니다. 박이룡 장군은 충주 박 씨로 1533년(중종28년)에 영천 부사를.. 2022. 1. 8.
<김천 봉산면 신암리 효절공 남정 김시창 효절각> 임금도 감동하고 호랑이도 감동한 효성 앞서 쓴 영동 송계서원 유허비각을 보고 송계 육 선생 중 한 분인 효절공 남정 김시창 선생이 떠올려졌네요. 지난봄에 김천 봉산면 신암리에 있는 김시창 선생 정려각을 다녀왔지요. 그걸 소개하려고 합니다. 나라에서 내려준 시호가 효절공(孝節公)인데 선생은 무척이나 효자였다고 합니다. 그 효행을 기리려고 세운 정려각과 빗돌이랍니다. 남정(嵐亭) 김시창(金始昌)[1472~1558]선생은 해풍(海豊) 김 씨이고요. 1472년(성종 3) 금릉군 대항면 대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천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모심이 지극하였고 학문 또한 뛰어나고 깊어서 사림의 추앙을 받았답니다. 조광조의 추천으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데 3년 내내 워낙.. 2022. 1. 6.
영동 성장환 고택(성위제 가옥) 미촌마을 정겨운 옛집 해거름 할 때 찾아간 영동 성장환 고택입니다. 영동군 학산면 봉림리 707에 있고 국가 민속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된 옛집입니다. 들어설 때 오른쪽에 있던 건물은 마굿간이랍니다. 한 해에 한 번씩 초가지붕을 새로 올린다고 하네요. 새 짚을 올리고 관리하는 게 참 보기 좋습니다. 숙종 6년(1680) 때에 처음 세워진 옛집이랍니다. 안채를 포함해서 모두 20세기 초 이후의 건물인데 다만 광채만 18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사랑채·광채·문간채·일각 대문·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채와 사당, 일각문, 화장실을 빼고는 모두 초가로 되어있답니다. 마구간 옆으로는 뒤주가 있고 정면으로는 사랑채가 있습니다. 주로 남자들이 생활하는 곳이고 손님을 대접할 때도 사랑채에서 하지요. 사랑채 옆으로 대.. 2022. 1. 2.
<예천 죽고서원> 새롭게 복원을 했다는데 으리으리하네~! 예천 말무덤 가까이 신풍리 마을에는 이 있어요. 이 둘레를 여러 차례 다녀봤는데 이런 서원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뭐든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딱 맞는 말이네요.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54-1에 있어요. 죽고서원이 있는 지보면 신풍리 마을은 파평윤씨 집성촌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모시고 배향하는 분은 바로 파평 윤씨, 돈암 윤사석과 죽호 윤섭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있지요. 윤사석 [尹師晳]은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돈암(遯菴). 성종 때 사헌부집의를 지냈으나, 연산군 때 거듭되는 사화로 현인 군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본 뒤, 사모(紗帽)와 관복을 찢어버리고 가족들을 거느리고 청주의 옥화대(玉華臺)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동문선』에 윤사석의 시 한 수가 전하고 있으며, 이이(李珥)..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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