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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과 옛집, 생가

영동 성장환 고택(성위제 가옥) 미촌마을 정겨운 옛집

by 노을(NoEul) 202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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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성장환 고택(성위제 가옥)

해거름 할 때 찾아간 영동 성장환 고택입니다.

영동군 학산면 봉림리 707에 있고 국가 민속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된 옛집입니다.

들어설 때 오른쪽에 있던 건물은 마굿간이랍니다.

한 해에 한 번씩 초가지붕을 새로 올린다고 하네요.

새 짚을 올리고 관리하는 게 참 보기 좋습니다.

숙종 6년(1680) 때에 처음 세워진 옛집이랍니다. 안채를 포함해서 모두 20세기 초 이후의 건물인데 다만 광채만 18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사랑채·광채·문간채·일각 대문·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채와 사당, 일각문, 화장실을 빼고는 모두 초가로 되어있답니다.

사랑채

마구간 옆으로는 뒤주가 있고 정면으로는 사랑채가 있습니다.

주로 남자들이 생활하는 곳이고 손님을 대접할 때도 사랑채에서 하지요.

사랑채 옆으로 대문이 있는데, 아마도 예전에는 대문을 중문으로 썼을 듯해요. 바깥으로 나가는 중문이 옛날에는 대문이었을 듯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안쪽은 이런 모습이랍니다.

왼쪽은 우리가 들어왔던 대문이에요. 오른쪽은 광채이고요.

저 안쪽에 보이는 건 안채랍니다.

이 집에서 가장 독특하고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모습대로 만들어진 광채랍니다.

이 광채는 못 하나 박지 않고 오로지 나무와 나무를 깎아서 서로 끼워 맞추어 만든 건물이랍니다.

나무를 아래위 모두 사선으로 깎아서 아래와 중간에다가 서로 맞춰 끼웠답니다.

우리 옛사람들의 건축 기술이 정말 놀랍지 않나요?

광채에 난 창입니다.

창문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이렇게 나무 기둥을 드문드문 세우고 가운데에 얼기설기 나뭇가지를 끼운 것도 재밌습니다.

옆면과 뒷면을 모두 이렇게 만들었네요.

그리고 아래쪽은 통풍을 위해서 모두 띄워서 주춧돌 위에 세웠답니다.

여기는 아까 처음 들어올 때 봤던 사랑채의 뒷면이랍니다.

아궁이가 두 개가 있고 담벼락 안쪽에는 좁은 통로가 있답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사랑방 손님을 대접할 때는 아마도 음식을 이 통로를 통해서 들고났을 듯하네요.

또 이 통로를 벽장으로도 썼답니다.

자연스럽게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는 담벼락도 되는 거고요.

참 놀랍습니다.

사랑채 뒷면입니다.

사랑채로 쉽게 드나들 수도 있고 또 저렇게 가려져 있으니 외부인이 주로 여인들이 생활하는 안채를 쉽게 들여다볼 수 없도록 했답니다.

안채

성장환 고택의 안채입니다.

집이 야트막하니 참 정겹지 않나요?

양반님네들 위엄이나 권세 같은 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실제로 이 댁 사람들은 마을에서 부자였다고 해요.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한테 베풀고 살았다고 하네요.

마을 일에도 적극 나서서 해왔다고도 합니다.

고택에서 흔히 보는 그런 위엄이 안 보여서 정말 친근하고 더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집이었답니다.

안채 뒤쪽으로 돌아가면 더 뒤쪽으로 나가는 일각문이 있습니다.

일각문 너머로 이 댁의 사당이 보입니다.

성모사(聖慕祠)

이 댁의 조상들의 위패를 모셨겠지요?

안쪽은 잠겨있어서 못 봤습니다.

성모사 편액과 중요 민속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된 걸 기념하며 새긴 글이네요.

행랑채, 대문채

성장환 고택의 대문채인데요. 행랑채라고도 합니다.

방이 하나 있고 끝에는 대문이 있어요.

아마도 옛날에는 이쪽으로 드나들지 않았을까 싶네요.

 

오늘은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림리, 미촌마을에 있는 <성장환 고택>을 둘러봤는데요. <성위제 가옥>이라고도 합니다.

성위제 님은 성장환 님의 손자라고 합니다.

지금 문화재로 지정된 정식 이름은 <성장환 고택>이라고 합니다.

 

https://youtu.be/uwGgjF_1roI

카카오 맵에도 <성위제 가옥>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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