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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과 빗돌, 정려각

[예천 쌍효각] 말무덤이 있는 대죽리 마을에서 두 아들의 효를 기리는 정려각을 만나다!

by 노을(NoEul)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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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대죽리 쌍효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마을 들머리, 사소한 말 한마디로 티격태격 문중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자 갖가지 욕을 사발에 담아 무덤에 묻었더니 싸움이 그쳤다는 말(言) 무덤으로 가는 길 아래에 정려각 하나가 있어 많이 궁금했답니다. 

대죽리 한대마을에는 예부터 500여 년 앞서 만들었다는 말무덤이 있습니다.

예전에 갔을 때는 안 보이던 쉿~! 조형물이 생겼네요. 참 반가운 일입니다.

조형물 너머로 보이는 큰 무덤이 바로 <말무덤>이랍니다.

말무덤 앞에는 빗돌도 있습니다. 앞면에는 '말무덤'이, 뒷면에는 '言塚'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말무덤을 자세하게 쓴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154

 

쉿~! 가끔은 소리내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는 걸 기억해요! [예천 말무덤 言塚]

쉿~! 입을 다물어서 실수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을걸요? 다른 말로 하면,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할 일도 많다는 거겠죠?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은 예부터 이름난 분들이 많이 난 곳이라고 합

sunnyhanbit.tistory.com

 

두 형제의 효를 기리려고 세운 <쌍효각>

 

말무덤에 가보려고 여러 차례 이 마을에 왔으나 이 정려각은 정작 오늘 처음 가보네요.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이쪽으로 내려오는 길이 여의치 않았어요. 앞에 밭이 있어서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오늘은 밭이 무성하지 않아 한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네요.

아하~! 쌍효각이군요.

'雙孝閣'이라 쓴 편액이 걸려있네요.

쌍효각이라, 그렇다면 효자 둘을 기리는 정려각인가?

아니면 효자, 효부인가?

아하, 어렴풋이 알겠네요.

효자 경주최공 영학 영중 지려(孝子 慶州崔公 英鶴 英重 之閭)라고 쓴 현판이 있습니다.

 

경주 최씨인 최영학, 최영중 두 사람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이군요.

쌍효각의 내력을 쓴 '쌍효각기'도 걸려있네요.

예천 용궁향교 전교였던 죽계 안승락 선생이 쓴 글이라고 합니다.

 

1999년에 아들들이 세웠다고 하네요.

쌍효각 상량문

 

좋은 뜻이 담긴 곳인데 안내판이 하나 없어 조금 아쉽습니다.

쌍효각 위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말무덤이 나옵니다.

쌍효각 앞에서 보는 대죽리 마을 풍경입니다.

가을걷이를 끝낸 빈 들판인데도 무척 아름답고 평온하게 보이네요.

예부터 이 마을에 춘천박씨· 김녕김씨· 밀양박씨· 김해김씨· 진주류씨· 경주최씨· 인천채씨 등 여러 성씨들이 이 마을에 모여서 살았다고 합니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저 빗돌은 '김녕 김씨 세거지'를 알리고 있더군요.

여기는 대죽리 마을 들머리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길이 쌍효각과 말무덤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번에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봅니다.

저 앞에 저 솔숲 있는 곳이 말무덤과 쌍효각이 있는 곳입니다.

쌍효각이 저 아래쪽에 보이네요.

들판이 굉장히 너르다 했더니, 이 마을에 정미소가 무척 많더군요.

예부터 이름난 분들이 많이 난 대죽리 마을입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외가가 있는 마을이기도 하고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도 하고 유한양행, 유한재단을 세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평생 실천하고 모든 유산을 사회에 공헌하고 가신 유일한 박사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정미소 안에는 추수한 곡식이 가득입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듯하네요.

농사짓는 분들한테는 이 때가 가장 행복할 때가 아닐까요?

대죽리 한대마을은 그냥 길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평온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무척이나 풍요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도 정미소가 있네요.

저기도 정미소~!

정말 풍요롭게 보이지요?

 

오늘은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과 말무덤, 그리고 두 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쌍효각을 소개하며 마무리합니다.

 

https://youtu.be/jLtnmC7pE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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