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쓴 영동 송계서원 유허비각을 보고 송계 육 선생 중 한 분인 효절공 남정 김시창 선생이 떠올려졌네요.
지난봄에 김천 봉산면 신암리에 있는 김시창 선생 정려각을 다녀왔지요. 그걸 소개하려고 합니다.
나라에서 내려준 시호가 효절공(孝節公)인데 선생은 무척이나 효자였다고 합니다. 그 효행을 기리려고 세운 정려각과 빗돌이랍니다.
남정(嵐亭) 김시창(金始昌)[1472~1558]선생은 해풍(海豊) 김 씨이고요. 1472년(성종 3) 금릉군 대항면 대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천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모심이 지극하였고 학문 또한 뛰어나고 깊어서 사림의 추앙을 받았답니다. 조광조의 추천으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데 3년 내내 워낙 지극하여서 그 법도가 남의 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효성뿐 아니라, 나라에 충성한 것도 매우 남달랐다고 합니다. 20세 때 성종, 중종, 인종 등 임금이 승하할 때마다 신하로서 제례를 극진히 하여 선생의 지극한 충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해요.
더구나 인종이 승하한 때는 선생의 나이 70이 넘었는데도 복례(復禮)에 어긋남이 없었다고 합니다. 김시창 선생이 죽은 후 조정에서 그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정려를 내리고 명종 때 효절(孝節)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왼쪽은 효절공 남정 김선생 시창 지려(孝節公 嵐亭 金先生 始昌 之閭)라고 쓴 효절각 안에 있는 빗돌이고요.
오른쪽은 사호 효절 해풍 김공 시창 효행비(賜號 孝節 海豊 金公 始昌 孝行碑)라고 쓴 효행비입니다.
효절각 안에 있는 정판은 賜號孝節金始昌之閭 (사호효절김시창지려)라고 쓰여있네요.
효절각 앞 상석에도 사호효절김시창지려(賜號孝節金始昌之閭)라고 쓰여있습니다.
선생이 부친상을 당해 또 3년 시묘살이를 할 때에 호랑이가 그 곁을 지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답니다.
그만큼 선생의 효심이 정말 지극했던 분이었네요.
효행비 뒷면에는 아마도 선생의 효행을 기록했겠지요?
우암 송시열은 묘비 표에 '김시창의 충효는 만인의 본이 된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선생의 효절은 『삼강록(三綱錄)』에 실렸으며 묘소는 봉산면 고도암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경렴서원과 송계서원에 제향되었다고 하네요.
송계서원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바로 앞서 소개했던 영동 <송계서원 유허비각과 송계서원 단소>에 모시고 있습니다.
https://sunnyhanbit.tistory.com/176
키 큰 소나무가 호위하듯 서있는 남정 김시창 선생의 효절각입니다.
원래는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 마을에 있었는데 지금 현재는 여기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에 있답니다.
주소는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 662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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