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역적이 나온 집은 나라에서 그 집을 모두 헐어버리고 그 집터까지 모두 파헤쳐서 못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때부터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고려 때에는 집을 헐어버리는 것까지만 하던 걸 조선시대에 와서는 집터까지 연못으로 만들어버렸다고요.
김천시 아포면 제석리 마을 위쪽,
금오산 뒤쪽이 되겠네요.
그 아래에 길지(吉池)라는 연못이 있답니다.
바로 앞서 소개했던 역적이 된 어떤 사람의 집터가 바로 길지입니다.
제석 3리 마을회관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길지를 찾아갑니다.
너른 들판이 나오고 바로 저 끝에 나무들이 많은 곳이 길지랍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아포 제석리 마을에 길운절(吉云節)이란 청년이 절에 들어가서 살 때라고 하네요.
이때 기축옥사(1589년)를 일으킨 정여립 첩의 사촌인 소덕유가 화를 피해 살고 있는 절에서 만나게 됩니다.
소덕유는 당시에 승려가 되어 금오산성을 쌓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둘은 제주도까지 가서 함께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했지요.
소덕유와 길운절은 제주목사 성윤문이 민심을 잃은 틈을 타 제주도의 문충기·홍경원 등의 토호 세력과 결탁하여 성윤문과 서울에서 내려온 관리를 죽이고 경성을 침범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 역모 계획을 기생이 엿듣고 협박까지 했다고 하네요.
길운절은 역모 사실이 탄로 날 것이 뻔하여 자기가 스스로 역모 계획을 했음을 털어놨다고 합니다.
그 덕에 본인은 자기만 처형당하는 것으로만 끝났지만 다른 역모자들은 모두 재산을 몰수당하고 능지처사를 당하였습니다. 또 연좌제로 모든 식구들까지 희생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길운절은 역모의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밀고자가 되어 죽임을 당했지요.
그 뒤로 역모자의 집터까지 훼손을 당하는데,
아까 앞서 말한 대로 집을 모두 허물고 그 자리에다가 연못을 만들었던 게지요.
그 연못이 바로 지금 사진으로 보고 있는 '길지'랍니다.
길운절의 성씨를 따서 연못의 이름을 지은 듯 보이네요.
연못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잡풀이 우거져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더군요.
길운절의 역모로 길운절의 집만 파헤쳐진 게 아니라 당시에 이 마을이 독립현이었던 <개령현>이었는데,
그만 현까지도 폐현되는 일을 겪었다고 하네요.
역적이 나온 '현'이라고 해서 현에서도 폐하고 금산군 김천으로 편입시켰다고 합니다.
그 뒤로 다시 정인홍 일파가 정권을 잡게 되었을 때,
유생들의 청으로 복현이 되어 다시 개령현으로 바뀔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잘 알고 나니,
이 연못이 예사로 보이지 않네요.
길운절한테는 얼마나 한이 서려있을까?
역모를 꿈만 꾸고 시행도 못하고 자기 집뿐 아니라 집터를 파헤쳐 이렇게 못으로 바꾸어버렸으니 말이에요.
길지에서 바라보는 제석리 마을입니다.
길지로 들어가는 길은 잡풀이 우거지고...
이런 슬프고 아픈 사연을 간직한 연못인 지 아는지 모르는지...
혹시라도 알고 있을까?
저 낚시꾼은.........
너른 연못에 연꽃만이 환한 낯빛을 보이며 피어나겠지요?
지금은 길지에 모아둔 물로 이 마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오늘은 김천시 아포면 제석리 마을에 있는 길지 연못을 둘러봤습니다.
남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연못!
야망을 품은 길운절의 큰 뜻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끝내 제 집까지 파헤쳐지고 마을 현까지 연좌제로 폐현될 만큼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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