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군 용산면 신항리 503-1
영동 신항리 상여입니다.
이용강 대감의 장례 때 쓴 상여인데요.
이용강은 조선 고종때 경상감사와 공조판서를 지낸 분으로 영동 황간으로 낙향하여 노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조선 순종 3년(1909년)에 제작된 상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안내판에 나와있는 것과 달리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가의 상여로 고종의 6촌 형인 이용강 대감이 충정북도 영동군 황간면 금계리로 유배 온 뒤 1870년에 세상을 떠나자, 고종이 그를 애도해 하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는 세종의 열셋째 아들인 밀성군(密城君)의 15세손 이용직(李容直, 1824∼1909)의 것으로 밝혀졌다. 한 동안 주민들이 고종의 6촌 형인 이용강 대감의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은 이용직이 용강 현감을 지낸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용직은 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용강현감을 거쳐 여주목사, 영남 어사, 경상도 감사에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다. 홍문관·예문관 제학을 지냈고,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묘소는 황간면 수석리 후록에 있다.
출처 - 영동신항리상여 [永洞新項里喪輿]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실제는 정확하게 어떤 게 사실인지를 모르겠네요.
아무튼 찻길 옆 너른 터에 따로 마련된 보호각 안에 잘 모셔져 있는 신항리 상여를 구경합니다.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0호인 <영동 신항리 상여>입니다.
제법 큰 보호각 안에 신항리 상여가 있습니다.
가만 보니, 상여를 직접 들여다보기는 힘들 것 같군요.
문이 닫혀 있으니까요.
문은 이렇게 닫혀 있습니다.
유리 안에 있는 상여를 봅니다.
스마트폰을 유리창에 바싹 붙여서 찍습니다.
안 그러면 유리에 반사된 내 모습과 얼룩 때문에 안쪽 풍경이 제대로 안 찍히거든요.
아무튼 오늘은 모두 그렇게 찍은 사진이네요.
위 사진은 요여(腰輿)라고 합니다.
시신을 묻고 혼백과 신주를 들고 오는 작은 가마입니다.
네 사람이 들 수 있고 상여 가장 앞에 들고 간다고 하네요.
자, 이게 바로 그 상여입니다.
정말 상여가 굉장히 화려하네요.
가장 위에는 봉황이 앞뒤로 있네요.
또 상여 가장 위에는 천으로 양산을 쓰듯 그런 모습입니다.
청사초롱도 있고요.
상여를 들고나갈 때도 바로 이런 모습이겠네요.
앞에는 요여를
그 뒤에 상여를
진짜 왕가의 상여일까요?
진짜 화려합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용머리 장식도 보입니다.
요여와 마찬가지로 상여도 상여 메는 사람이 들 수 있도록 한 나무 기둥이 보입니다.
신항리 상여 뒤쪽으로 돌아가서 찍었는데
여긴 유리창에 얼룩이 많아서 이렇게밖에 안 찍히네요.
이 상여를 마지막에 썼을 때가 언제일까요?
아마도 꽤 오랫동안 이 자리에 보존되어 있었겠네요.
오늘은 영동 신항리 상여를 둘러봤습니다. ^^
영동군 용산면 신항리 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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